가을이 되면 부서마다 비슷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내년 회장 누가 하지?" "○○ 형제 어때요? 다들 좋아하잖아요." "본인이 하겠대요?" "물어봐야죠."
이 대화에서 이미 두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회장이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인지, 그리고 그 일을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상황인지입니다.
임원 선출이 어긋나는 지점은 대개 투표 방식이 아니라 그 앞 단계입니다.
무슨 자리인지 정해지지 않은 채로 뽑는다
부서 임원 명단은 대체로 작년 것을 그대로 씁니다.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 회계. 그런데 각 자리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문서로 정리된 부서는 많지 않습니다.
그 상태로 뽑으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 총무가 뭘 하는지 몰라서 결국 회장이 다 합니다
- 서기와 총무의 일이 겹치는데 아무도 정리하지 않아 둘 다 안 합니다
- 작년 임원이 잘하던 일이 그 사람의 개인기였는데, 새 임원은 그 일이 자기 일인 줄 모릅니다
자리 이름이 아니라 하는 일 목록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지난 1년간 부서 운영에 필요했던 일을 쭉 적어 놓고, 그걸 몇 개 묶음으로 나누는 순서가 맞습니다. 그렇게 나누고 보면 작년 조직도가 실제 일과 안 맞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 정리를 해 두면 부수 효과도 있습니다. 부탁할 때 설명할 게 생깁니다. "총무 좀 해 줘"보다 "한 달에 회비 정산 한 번, 행사 때 물품 준비, 이 두 가지가 주된 일이야"가 훨씬 승낙받기 쉽습니다.
인기와 적합성이 갈리는 이유
부서에서 인기 있는 사람은 대체로 잘 웃고, 사람들과 두루 친하고, 모임을 즐겁게 만듭니다. 좋은 자질입니다. 그런데 임원의 일은 상당 부분 이런 종류입니다.
- 연락을 여러 번 돌리고 답이 없으면 다시 돌리기
- 회비를 안 낸 사람에게 불편한 이야기 하기
-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잡일을 마지막에 떠맡기
- 정해진 기한 안에 자료 제출하기
이건 친화력과 다른 종류의 성실성입니다. 모임에서 분위기를 살리는 능력과 일이 굴러가게 하는 능력은 같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투표만으로 뽑으면 자주 어긋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면을 기준으로 투표하는데, 그건 대체로 모임에서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반대 함정도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에게만 계속 맡기는 것입니다. 매년 같은 사람이 임원을 하다가 결국 그 사람이 지쳐서 부서를 떠납니다.
방식마다 얻는 것과 잃는 것
선출 방식은 부서 규모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잡는 게 맞습니다.
| 방식 | 맞는 상황 | 문제 |
|---|---|---|
| 전체 투표 | 부서가 크고 서로 잘 안다 | 인기 편중. 뽑힌 사람의 사정을 아무도 모른 채 결정됨 |
| 기존 임원 추천 | 실무를 아는 사람이 판단 | 폐쇄적으로 보임. 늘 하던 사람만 뽑히기 쉬움 |
| 담당 사역자 임명 | 빠르고 조율이 쉽다 | 본인 동의가 형식적이 되기 쉬움. 반발 가능 |
| 자원 지원 | 의지가 확실하다 |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자리가 생김 |
실제로는 섞어 쓰는 경우가 가장 무난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순서입니다.
- 담당자와 기존 임원이 자리별로 후보군을 2~3명씩 추립니다
- 후보에게 개별로 의사를 확인합니다. 여기서 절반은 정리됩니다
- 남은 후보를 놓고 부서 전체가 확인하거나 투표합니다
2번이 핵심입니다. 후보의 사정을 먼저 확인하지 않고 투표부터 하면, 뽑힌 뒤에 "사실 내년에 취업 준비라서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때는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뽑기 전에 물어봐야 할 것
의사를 확인할 때 "할 수 있겠어요?"라고만 물으면 대부분 거절하지 못합니다. 부탁하는 사람이 사역자나 선배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렇게 나눠 묻는 편이 정확합니다.
- 내년 상황이 어떤가요? 취업 준비, 시험, 이직, 결혼, 학업 일정을 먼저 듣습니다
- 일주일에 어느 정도 쓸 수 있나요? 시간 단위로 물어야 현실적인 답이 나옵니다
- 이 일 중에 부담스러운 게 있나요? 앞서 정리한 일 목록을 보여 주면서 묻습니다
- 못 하겠으면 지금 말해도 됩니다. 이 문장을 실제로 말해 줘야 거절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거절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물어야 합니다. 거절했는데 계속 설득하면, 그 사람은 다음부터 아무 요청에도 솔직하게 답하지 않습니다.
가을에 시작해야 하는 이유
임원 선출을 12월에 시작하면 늦습니다. 연말은 행사가 몰려 있어 후보와 차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없고, 결정이 급하게 나면 인수인계할 기간도 사라집니다.
역산하면 이렇게 됩니다.
10월
- 지난 1년간 실제로 필요했던 일을 목록으로 적습니다
- 그 목록을 묶어 내년 임원 구조를 정합니다. 작년 조직도를 그대로 쓰지 않습니다
- 자리별로 하는 일과 예상 소요 시간을 한 장으로 정리합니다
11월 초
- 자리별 후보군을 2~3명씩 추립니다
- 후보에게 개별로 의사를 확인합니다. 사정을 먼저 듣습니다
- 거절한 자리는 후보를 다시 찾습니다
11월 말
- 부서 전체에 후보를 공개하고 선출 절차를 진행합니다
- 결과를 공지하고 임기 시작일을 명시합니다
12월
- 현 임원과 새 임원이 함께 일하는 기간을 만듭니다
- 인수인계를 진행합니다
- 연간 계획 수립에 새 임원을 참여시킵니다
12월에 두 팀이 겹치는 기간을 두는 것이 가장 큰 차이를 만듭니다. 이 한 달이 없으면 새 임원은 1월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작합니다. 무엇을 넘겨야 하는지는 미리 정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뽑고 나서가 진짜 시작이다
선출이 끝나면 일이 끝난 것 같지만, 새 임원이 자리를 잡는 데는 몇 달이 걸립니다. 이 기간에 담당자가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권한을 실제로 넘깁니다. 이름만 임원이고 모든 결정을 여전히 사역자가 하면, 임원은 심부름꾼이 됩니다. 몇 달 지나면 의욕이 사라집니다.
첫 실수를 덮어 줍니다. 새 임원은 반드시 실수합니다. 공지를 늦게 올리거나, 예산을 빠뜨리거나, 준비물을 놓칩니다. 첫 실수에 대한 반응이 그 사람의 남은 임기를 결정합니다.
브랜치스에서는 구성원 명부에서 역할을 지정해 관리하기 때문에, 임원이 교체되면 명부에서 역할만 바꾸면 됩니다. 누가 어떤 자리를 맡고 있는지가 부서 안에서 같은 화면으로 공유되어, 새 임원이 부서원들에게 따로 자기소개를 돌리지 않아도 위치가 드러납니다.
정리하며
임원 선출이 인기투표가 되는 건 사람들이 얕아서가 아니라, 판단할 정보가 인기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리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적어 놓으면 다른 기준이 생깁니다. 후보에게 미리 사정을 물으면 무리한 선출이 걸러집니다. 가을에 시작하면 인수인계할 시간이 남습니다.
이 세 가지는 방식을 바꾸는 게 아니라 순서를 바꾸는 일입니다. 투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전에, 무슨 자리를 뽑는 건지부터 한 장으로 적어 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